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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장안사 대웅전(機張 長安寺 大雄殿)
작성일2017/06/06/ 작성자 *** 조회수1012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3년(673)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여 쌍계사(雙溪寺)라고 했다가 애장왕(哀莊王, 800~809)이 다녀간 후에 장안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38년(인조 16) 태의태사(太義大師)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은 1654년(효종 5)에 원정(元正), 효능(孝能), 충묵(沖?) 스님의 의해 중건되었다고 하며, 1948년에 다시 크게 중수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볼때 지금의 대웅전 모습은 1654년 중건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장안사는 주불전인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이 있고 명부전, 응진전과 나란히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으나, 요사채들은 약 30여년 전에 신축된 것이며 원래는 대웅전을 마주보고 강당이 배치되어 대웅전, 응진전, 명부전, 강당이 대웅전 앞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ㅁ자형 배치형식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각구성과 배치형식은 조선 중?후기에 통불교계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이른바 산지중정형(山地中庭形)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양식인 장안사 대웅전에는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왼쪽에 약사여래(藥師如來)가 모셔져 있고, 불상 뒤에는 1856년(철종 7)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이 건물에서 주목할 점은 창호(窓戶)의 구성으로, 격자살과 교살이라는 단 두가지 창살기법으로 중심성을 강조하는 입면구성의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 창호의 윗부분에는 격자살마다 한 칸 건너 원형의 꽃살을 장식하여 소목공예(小木工藝)의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은 위치하고 있는 지대가 높을 뿐 아니라, 건물 폭에 비해 건물 자체의 높이가 높고 처마가 깊게 돌출한 팔작지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평면의 규모에 비해 웅장한 느낌을 주며, 공포 안의 부재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장식성을 더해주는 등 중심 건물로서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기장 장안사 대웅전(機張 長安寺 大雄殿) 이미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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