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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인터뷰(일간스포츠-2016. 7. 14) - 영상정보처리기기 운영방침 게시물 보기
군수인터뷰(일간스포츠-2016. 7. 14)
작성일2016/12/21/ 작성자 미래전략과 조회수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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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규석 기장군수 “돔구장 짓겠다 ‘뻥’ 친 이유는…”


오규석(57) 기장군수는 야구 팬에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부산 지역 정가에선 유명하다. 1995년 37세 나이에 민선 1기 군수로 선출됐다. 이후 12년 공백기를 거쳐 2010·2014년 무소속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수 연임에 성공했다. 지역에선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새누리당 아성을 위협하는 '무소속 양오'로 꼽힌다. 오 군수는 이제 야구와도 접점을 찾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3년 8월 부산시·기장군과 양해각서를 맺고 야구 명예의 전당과 야구테마파크를 건립하기로 했다. 기장군이 조성할 야구테마파크에선 2016년 9월 제7회 세계여자야구월드컵대회가 열린다.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인 오 군수는 7월 13일 서울 도곡동 대한야구협회에서 열린 조직위원회 현판식에 참석했다. 그는 "기장군은 야구를 배우는 자세로 소통하겠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배우겠다"고 말했다.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은 "여러 지역을 돌았지만 기장이 한국에서 겨울 야구 캠프지로 가장 적합한 곳 중 하나"라고 말했다.


- '구두를 신지 않는 군수'로 들었다. 오늘도 등산화 차림인데.

"출장이 있을 때는 그래도 좀 좋은 걸 신는다. 지역 현장을 뛰어야 하는 게 단체장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늘 새벽 4시30분에 일어난다. 출장에서 늦게 돌아오면 잠깐 쉬었다 바로 출근한다."


- 그러고도 건강이 유지되나.

"아내가 영양식을 챙겨 준다. 한의사 시절부터 습관이 돼서 괜찮다. 1994년 고향인 기장에 내려가 한의원을 개업했다. 솔직히 한의사로서 높은 실력은 아니었지만 열정은 있었다. 그래서 야간진료를 시작했다. 당시엔 맞벌이 부부나 야근 노동자는 한의원을 찾기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야간진료 의원이 많이 늘었다."


- 초등학교 교사와 한의사 경력이 있다. 학번이 어떻게 되나.

"진주교대 78학번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9년 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한의대 88학번으로 재입학했다."


- 동국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는데.

"서른 한 살에 늦깎이 입학을 했다. 고민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있어야 하나, 데모를 하며 정권과 싸워야 하나. 그 때 정신을 아직 잃지 않으려 한다."


-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95년 지방선거가 부활됐다. 당시 민자당에서 양산시에서 분리된 기장군에 나를 공천했다. 서울로 찾아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지만 결국 설득당했다. '선거 운동은 우리가 다 해주겠다'고 하더라. 당선이 되고 나니 막막했다. 뽑아주신 분들이 다들 어르신 아닌가. 처음엔 군청에 사랑방을 설치해 침을 놓는 것부터 시작했다. 침 하나로 소통을 하면서 지방자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배웠다. 물론 지금은 선거법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 1995년 선거에서 김두관(전 행정자치부 장관) 남해군수와 함께 주목받았다.

"만나면 소주 한 잔 하는 사이였다. 남해에 맛있는 낙지집이 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짰다. 경비 절감 정신이 투철했다. 내가 남해로 가도 절대 자기가 계산하지 않더라."


- 김 전 장관은 군수 시절 남해에 스포츠파크를 개설했다. 지방 행정과 스포츠가 결합된 좋은 사례라는 평가였다.

"많이 배웠다. 같은 시기 기장군에선 멸치 축제를 시작했다. 지방 축제는 그때도 많았지만 식재료 축제는 드물었다. 군 의회에 안을 올리니 '미친 짓'이라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지난 축제에도 100만 명이 왔다. 멸치 가격도 올랐고, 주민 소득과 지역 지가도 상승했다. 이 사례에서 야구 사업도 가능하다고 봤다."


- 지자체의 경기장 건설이나 대회 유치가 예산 낭비로 귀결되는 사례도 많다.

"기장에 장안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2012년에 예산 수십 억원을 들여 축구장 몇 면을 갖춘 수변 공원을 조성하자는 안이 올라왔다. 곰곰히 따져보니 돈을 버리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야구장을 짓자'고 안을 바꿨다. 그 때문에 축구인들로부터 욕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짓고 보니 야구동호인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여기에서 희망을 봤다. 강변 자갈밭이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야구 명예의 전당 유치 신청도 한 것이다."


- 기장군에서 돔구장을 짓겠다고 한 적도 있지 않았나.

"현실성 있는 계획은 아니었다. 사실 '뻥'을 친 것이다. 의도가 있었다. 기장군에 야구 관련 시설이 들어올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마침 2011년 부산시가 KBO에 야구 명예의 전당 유치 신청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사직구장 옆에 박물관을 지을 계획이었다. 이때 기장군에서 토지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제안해 일이 성사가 된 것이다."


- 유치 과정에서 여러 일이 있었을텐데.

"2012년 11월 8일 구본능 KBO 총재가 실사를 왔다. 직접 만나고 싶었는데, 부산시 측에서 '타 유치 도시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우려하더라. 그래서 다른 모임에 가려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차를 돌렸다. 담당 직원에게 '내가 논두렁에 숨어 있을테니 우연을 가장해서 이쪽으로 모셔라'고 했다. 구 총재에게 '10분만 설명하겠다'고 했는데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 같은 스포츠시설이지만 부산시가 인가한 골프장 사업은 반대하고 있다. 2012년 부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는데.

"'개발을 위한 개발'은 안 된다는 게 내 소신이다. 지난해 8월 부산 지역엔 기록적인 강우량이 기록됐다. '물폭탄' 사태였다. 조사해보니 난개발 지역이 피해가 더욱 컸다. 기장은 부산과 양산 사이에서 '허파' 역할을 하는 지역이다. 봉급 생활자와 서민이 산도 타면서 큰 돈 들이지 않고 여가를 보내는 쉼터다. 여기에 환경을 파괴하는 골프장이 들어서면 쉴 곳이 사라진다. 부산시에서도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 사업을 강행했다. 지방 행정기관과 유지가 결탁하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된다. 하지만 알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돈키호테'라는 비아냥을 무릅쓰고 감행했다."


- 부산시에서 명예의 전당 관련 예산 2억원을 추경 편성하지 못해 공사 일정이 6개월 늦춰졌는데.

"업무상 실기를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부산시에서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 기장군에선 '예산이 없으면 군비에서라도 보태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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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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