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군 전경 사진
기장이란 명칭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한자음(漢字音)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장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삼국사기》권34, 잡지3 양주 동래 군조에 갑화양곡(甲畵良谷)에서 기장으로 개명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갑화양곡이라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장은 《고려사》권57, 지리2 양주조에 다른 이름으로
차성(車成)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으므로 차성이라고도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갑화양곡이란 명칭은 어디에서 유래하였을까?

유래1
갑화양곡이란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알려면, 바로 이웃한 동래의 지명 변경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동래군은 경덕왕 16년 이전에는 거칠산군(居柒山郡)이었고, 거칠산군은 ’거칠다’의 우리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거친 뫼’ 즉 황령산 을 끼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갑화양곡도 우리말을 한자음화 한 이두식 지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갑화양곡을 이두식으로 풀이하면 갑국(甲國) 또는 갑향(甲鄕)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갑향의 갑은 음독하여 갓[邊]과 통하는 것으로 보고 갓마을[邊城-변두리마을]이라 하기도 하고, 갑을 대(大)로 보고 ’큰마을’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갑의 자전적 의미는 10간의 첫글자로서 수(首)=시(始)=초(初)와 같고, 차례와 등급의 첫째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어의를 그대로 살린 ’첫째 마을’ ’첫마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주민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귀환할 때 처음으로 닿는 정감어린 표현이 지명으로 정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유래2
갑화양곡에서 기장이란 명칭으로 변화된 이유에 대해서는 경덕왕 16년의 한화정책(漢化政策)과 관련이 있는데, 즉 통일신라는 이때에 통일신라의 모든 제도와
지명의 명칭을 한자식으로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갑화양곡에서 기장이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먼저 이러한 기장의 명칭은 ≪書經≫ 고우기장주(苦虞機張註)에 기(機)는
노아(弩牙)라 하고, 또 노기기장(弩機旣張)이라 하여 갑병으로 국토를 지키기 위하여 이곳 변방인 기장을 수비한데서 명칭이 유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으로 기장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유는 기장지역의 지형적 모습과 관련하여 현 기장읍의 소재지가 일광산을 배산으로 하여 베틀(機)을 차린(張) 형국이라는 것에서
기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고유지명을 한자식으로 개명할 때 주로 중국의 고사나 중국의 지명에서 많이 따온 점을 고려한다면
후자는 후대에 기장을 풍수지리적 입장에서 풀이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유래3
별칭으로 차성으로 불리어진 이유는 차(車)는 정수리(首)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차성은 수성이다. 해안과 접하는 군사상의 요충지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장을 차성으로 부르게 된 듯하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기장의 명칭은 해안과 접하고 있으면서 변경의 군사상의 요충지라는 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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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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